식생활 연구일지 (2025-03-30)
홍가리비
홍가리비가 1kg에 2000원대에 불과하다는 소식을 듣고 4kg을 주문했다. 대략 서너명이 먹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갓 쪄낸 가리비를 먹는 일은 너무 가뿐한 일이어서 나 혼자 절반 정도 먹은 것 같다.
남은 가리비를 그냥 냉장하면 비린내가 날 것 같아서, 나머지는 살짝 볶고 양념했다. 다진 마늘과 생강을 올리브유에 약한 불로 볶고, 가리비를 넣은 다음, 간장 한 스푼 넣었다. 꼬막비빔밥의 맛을 상상하며 참깨도 조금 뿌려서 마무리.
청국장
청국장을 요리하는 레시피가 이 세상에 별로 다양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김치찌개 끓이듯 만들다가 마지막에 청국장 한 주먹 넣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레시피가 대부분이고, 청국장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레시피는 세상에 별로 없다. 나한테도 원재료로써의 청국장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뚜렷한 아이디어가 없다.
얼마 전 은영님을 만나서 인스타그램에 올리신 '순두부 청국장' 레시피를 물어봤다. 김치 청국장찌개처럼 진하고 탁한 느낌이 아니라, 상당히 맑고 산뜻해보여서 궁금했다. 김치를 안넣고, 무로 국물을 내고, 순두부를 듬뿍 넣어서 국물이 맑아보였나보다고 하셨다.
일요일 점심으로 청국장을 할 생각은 없었고, 다만 산뜻한 된장국을 먹고 싶었다. 예전에 사둔 다시마를 전 날 밤에 물에 담가놨다. 냉침하면 국물이 얼마나 우러나오나 궁금했는데, 아침에 맛을 보니 썩 맛있지는 않았고 색도 연했다. 그래서 물이 끓자마자 불을 꺼두는 정도로 좀 더 국물을 내보았다. 다시마를 건져내고, 된장 두 스푼을 풀어서 맛 본 다음, 고민하다가 반 스푼 정도를 더 넣은 다음 야채를 넣었다.
산뜻한 된장국이 먹고 싶었으므로, 야채도 순한 것을 골랐다. 새송이 버섯 하나, 애호박 반 개, 양파 1/4개, 대파 반 단 정도. 두껍지 않게 썰어서 된장 국물에 넣었다. 두부도 한 모 썰어서 넣었다. 맛을 봤는데 조금 짰다. 야채 넣을 걸 생각해서 된장 반 스푼을 더 넣은 것이었는데!
그러다가 청국장 생각이 났다. 짜지 않게 일부러 만든 청국장이라고 했다. 날로 먹어본 적은 없어서 염도는 모르겠지만, 지난 번에 김치 청국장 찌개를 요리해볼 때를 기억해보면 간을 맞추는데 전혀 기여하지 않는 것 같아서 모험 삼아 청국장 반 주먹을 넣었다. 냉동되어 있던 것이라 잘 풀어지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맛을 보니 간은 크게 달라진게 없었다. 원래 계획한 것처럼 맑은 된장국 스타일은 벗어났지만 (그럴거면 당연히 청국장을 넣지 말았어야 했다), 생각보다 아주 맛있었다. 내가 했지만 너무 맛있군... 이라고 생각하며 밥 한 공기를 먹었다.
다시마 국물이 밑바탕을 잘 깔아줘서 맛있었던걸까? 아니면 된장과 청국장이 콩에서 각기 다른 맛을 끌어내서 맛있었던걸까? 아니면 달큰한 야채를 골라 두껍지 않게 썰어 넣었으니 달큰한 맛이 우러나와서 맛있었던걸까?
어쨌든 텁텁한 김치 청국장찌개가 아닌 청국장의 활용법을 하나 터득했다.
위트앤미트 바질 잠봉뵈르
4월을 코앞에 두고 오전마다 눈이 내리는 이상한 주말이었다. 뜨끈한 라멘을 먹고 싶었는데, 주변에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주말의 마지막 식사인데 아무거나 먹고 싶진 않아서, 속이 따뜻해지는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찾아 위트앤미트에 갔다.
아메리칸 다이너 스타일의 가게에서 잠봉뵈르를 파는 것이, 그리고 그걸 또 굳이 주문하는 나도 좀 이상하긴 했지만 지난번에 먹은 파스트라미 샌드위치가 맛있었으므로 한 칸 옆으로 넘어가 시도해보았다. 괜찮았다. 이렇게 제대로 크러스트를 구운 바게트 먹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소금집 잠봉뵈르에 대한 생각을 했다. 소금집을 한동안 가지 않으면, 기억과 감흥이 옅어져서, 잠봉뵈르 그게 뭐 별거 있나 생각한다. 바게뜨에 버터랑 햄 올린 거잖아. 그러다가 오랜만에 소금집에 가서 잠봉뵈르를 시키면, 진짜 이건 미쳤다 너무 맛있다 말이 되나? 라고 감탄을 한다.
파스트라미 샌드위치에 비해 이곳의 잠봉뵈르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종종 갈 것이다. 나는 맛있는 샌드위치를 위해서 만오천원 정도는 기꺼이 지불할 마음이 있다.
콤파일
산미 있는 원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첫 입 마시고 놀랐다. 호오와는 별개로 굉장히 색달랐다. 지금까지 경험해본 커피의 범주 밖에 있는 맛이었다. 아무리 산미가 있다하더라도 이 정도로 선명하게 체리, 와인 맛이 느껴지는 커피는 처음이었다. 그냥 커피가 아닌 제 3의 음료 같았다. 다시 말하지만, 좋았다는 것도,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달랐다. 다음에도 다시 시켜볼 것 같다.
어둑한 조명에 적당한 높이의 사각형 테이블이 있는 카페라니, 카페에서 노트북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연 몰려올 법한 곳이었다. 도착했을 때는 아주 여유로웠는데, 나갈 때는 사람들이 웨이팅 명단까지 작성해놓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